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의 원리는
'너 죽고 나 살자'입니다.
그런데,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천국의 원리는 '나 죽고 너 살라'입니다.
예수님께서는 이 천국의 원리를
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셨습니다.
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(고후4:10)
죄인된 날 살리시려
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
성령으로 우리 안에
부활생명을 잉태하신 것입니다.
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(고후4:12)
사도바울 일행은
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
그대로 실천하여
자신들이 온전히 죽어짐으로
성도들의 신앙의 밑거름이 되길
원하고 또 원했습니다.
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
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!
하나뿐인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불살라
나와 전혀 상관없는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?
사도바울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
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.
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...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(고후4:14,16)
이토록 소중한 하나뿐인 목숨을
남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이유는
예수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께서
우리를 다시 살리사 그분 앞에 서게 하신다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.
그러기에 낙심치 않고
날로 새로와지고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 안의 속사람으로 인하여
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
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.
내가 죽는 건, 엄밀히 말하면
죽는 게 아닙니다.
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것입니다.
우리의 죽음은 분명한 명분이 있습니다.
-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기 위해 죽습니다.
-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죽습니다.
- 다른 사람을 주님께로 이끌기 위해 죽습니다.
-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다시 살기 위해 죽습니다.
- 이제는 내가 살지 않고 주께서 사시도록 하기 위해 죽습니다.
- 천국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죽습니다.
- 죽음보다 더 큰 사랑이 죽음 너머에서 기다리고 계시기에 죽습니다.
그리고 가장 중요한 근원적인 명분은...
주께서 먼저 죽음으로 날 사랑하셨기에 죽습니다.
할렐루야~!